인연의 씨앗

인생 2013. 10. 17. 14:59 |

인연의 씨앗

 

 

희망, 공감!

 

 

 

 

인연을 여러 가지로 꼬아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겨난다.

 

엄밀히 말하면 꼬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여러 갈래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인연은 꼬여있다 말할 정도로 여러 갈래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인연을 바라볼 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그릇된 점은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당연한 관점일 수밖에 없달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인연이라는 것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미 내가 감지할 수 있는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인연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누군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연 만들기 작업에 동참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당장은 나 그리고 눈앞에 있는 누군가만 인연의 주인공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인연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흐르고 흘러 지금의 나와 만나고 지금의 또 다른 관계와 만난다.

 

또 앞으로의 나를 만들고 앞으로의 또 다른 관계를 만들 것이다.

 

무섭다.

 

인연.

 

나만 보고 살아가는 삶이 보이지 않는 곳에 얼마나 많은 씨앗들을 뿌리고 살아갈지.

 

하긴 보이는 곳도 완벽하게 관리하기 어려운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인연이라는 말, 소중하게 아껴가며 사용하던 말이지만 이렇게 소름끼치게 무섭기도 한말이구나.

 

그 인연을 무섭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나만 바라보고 사는 삶이구나.

 

그런데 어쩌느냐. 이럴 수 밖에 없는 것을.

 

그럼 나만 바라보는 삶의 반대는 무엇인가.

 

나만 바라보고 사는 삶의 반대급부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일까? 정말?

 


  무섭다. 내가 뿌린 씨앗,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있을지.

 

  무섭다. 누군가 뿌린 씨앗, 내 안에서 어떻게 자란 것일지.

 

  다시 주우러 떠날 수도 없다. 어딘지 모르기에.

 

  완숙하기 전에 미리 거두러 떠날 수도 없다. 어떤 것 인지 모르기에.

 

  방법이 있을까. 이 무게 감당할.

 

  그래서 인간은 참회하는 것일까.

 

  그러나 참회는 내가 보고 듣고 만져지는 것에 대해서만 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진정한 참회는 없다.

 

  왜냐면 우린 우리가 뿌린 씨앗이 어딘가에 뿌려져 자라고 있다는 것 외에는 그 사실 외에는 알 수 없으니까.

 

  정말 무섭다. 내가 뿌린 씨앗.

 

  그 씨앗을 품고 기르는 사람도, 그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도, 그 사람 안에서 품어지고 자라고 있는 씨앗도, 그걸 또 그곳에서 마주보고 있는 사람도.

 

  그 씨앗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무섭다.


written by 젊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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