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안녕?

인생 2013. 10. 16. 21:48 |

 

반 고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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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초상화>

 

흔히 물건의 시장 가격은 수요 공급에 법칙에 따라 형성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그림으로 치면 밑그림만 그린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 어떤 색들을 입히느냐에 따라 가격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채색이란 곧 이야기다.

 

누가만들었는가.

 

무슨사연이 있는가.

 

언제만들어 졌는가.

 

어디서만들어 졌는가.

 

만들어 졌는가.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바로 이런 의미들이 사려는 사람의 마음과 만나면 일반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말 그대로 터무니없다고 여겨질 정도의 값이 매겨지기도 한다.

 

살아생전 단 한 장의 그림만을 팔았던 빈센트 반 고흐.

 

그가 숨 막히는 완벽주의자 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는 같은 주제로 속작(速作)과 다작(多作)한 작가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그가 헐렁하게 예술을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자신의 그림을 정말로 팔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작품 중 그의 생전에 팔린 작품은 단 한 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고흐의 사후 현재 그의 그림의 가치는 얼마인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4위에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이 올라 있다.

 

 

<닥터 가셰의 초상>

 

1990년 일본의 제지 재벌에게 자그마치 825십만 달러에 판매 되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인 해바라기도 한화로 300억 이상을 호가 한다.

 

무엇이 고흐의 작품을 위상을 높아지게 만든 것일까?

 

나는 그것이 고흐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세하게 들어가면 미술사적 의미 등 학적인 설명들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그림에 담긴 고흐의 삶의 스토리도 같이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불꽃같은 37년의 삶, 그 중 미술에 모든 것을 투신 한 10.

 

그는 일반인으로서는 외톨이였지만, 예술가로서는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다.

 

거기의 그의 스토리가 있다 말 그대로 그만의 스토리.

 

아마도 이제야 우리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돈 맥클린의 절절한 Vincent의 가사처럼 달랐던그의 삶이 아주 조금 늦게 꽃 피게 된 것이다.

 

 

한때 거닐었던 유럽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오베르 쉬즈 와즈에서 만나고 왔던 고흐가 생각난다.

 

 

<오베르 쉬즈 와즈의 교회>

 

 

<오베르 쉬즈 와즈의 교회>

 

 

<오베르 쉬즈 와즈의 교회 내부>

 

고흐는 바로 그곳에 생전 마음으로 가장 가까웠던 친동생 테오와 이제는 몸도 가장 가깝게 나란히 누워있었다.

 

항상 붐빈다던 그곳은 침잠하던 고흐의 마음처럼 침침하고 흩뿌리던 비 때문에 멀리 한국에서 온 손님만을 맞이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맘껏 마음속에 긴 시간 담아놨던 물음을 던졌다.

 

행복했습니까?”

 

고흐의 침묵은 길지 않았다.

 

잠시 호흡 조절을 한 뒤 바로 답했다.

 

 

아주 편안해보였다.

 

고흐의 삶이 기쁨과 환희 연속은 아니었다.

 

세속의 시선으로는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의 판단 기준은 그것들과는 같은 차원이 있지 않았다.

 

고흐는 뜨거웠다.

 

정말 뜨거웠다.

 

그 온기가, 아니 그 열기가 아직도 남아 겁이 많은 딱딱하고 차갑게 굳은 우리들 가슴속을 따뜻하게 덥히고 녹여준다.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고흐의 그림과 함께하는 한 우리는 그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고흐의 이야기에 동참하는 것이 마치 우리도 여전히 잊지 않고 그런 삶을 동경하며 닮아가고 있다는 증거라도 되는 냥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흐는 행복했지만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쨌든 그림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도 팔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생전에 조금만 더 그림에 자신의 이야기를 포장하여 전달하는 법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그랬다면 그가 귀를 자르고 권총으로 스스로를 쏘기까지의 통째로의 그의 삶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몸짓은 sanity로부터 멀어지려는 것이 아닌 치열하고 절박하게 sanity하려는 과정이었음을 기억하자.

 

지금 우리가 어설프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밤의 카페>

 

<해바라기>

 

<아몬드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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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젊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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